'고프코어(Gorpcore)' 열풍, 왜 우리는 등산복을 입고 도시를 걷는가?

서울의 가장 힙한 거리인 성수동과 홍대. 이곳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옷차림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방수 기능이 있는 바람막이 재킷, 트레일 러닝화, 카고 팬츠… 마치 주말에 등산이나 캠핑을 떠나는 아웃도어 마니아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목적지는 산이 아닌 카페와 편집샵입니다.

이처럼 기능성 아웃도어 의류를 일상복으로 활용하는 스타일, 바로 '고프코어(Gorpcore)'가 패션계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고프(Gorp)'는 등산객들이 체력 보충을 위해 먹는 견과류 믹스(Good Ol' Raisins and Peanuts)를 뜻하는 속어에서 유래했죠.

과시적인 로고와 불편한 실루엣의 명품 대신, 왜 우리는 투박하지만 기능적인 등산복을 입고 도시를 걷게 되었을까요? 2025년의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고프코어 열풍, 그 이유와 매력을 깊이 파고들어 봅니다.

1. 고프코어의 탄생: '패션'이 아닌 '필요'에서 시작되다

고프코어는 하루아침에 등장한 유행이 아닙니다. 그 시작은 '패션'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 팬데믹의 유산: 전 세계를 휩쓴 팬데믹은 우리에게 '실용성'과 '편안함'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일깨워주었습니다. 재택근무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화려하지만 불편한 옷 대신 집과 집 근처(One-Mile Wear)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 아웃도어 활동의 급증: 실내 활동이 제약되자 사람들은 등산, 캠핑, 트레일 러닝 등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아웃도어 활동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이때 구매한 기능성 의류들은 뛰어난 내구성과 편안함으로 일상복의 영역까지 자연스럽게 침투했습니다.

  • 기후 변화와 예측 불가능한 날씨: 갑작스러운 소나기, 큰 일교차 등 예측 불가능한 도시의 날씨 변화 속에서 방수, 방풍, 투습 기능이 뛰어난 아웃도어 의류는 그 어떤 옷보다 훌륭한 '생존템'이자 '전천후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2. '조용한 과시': 왜 고프코어는 힙한 스타일이 되었나?

실용성에서 시작된 고프코어가 '힙'의 상징이 된 데에는 2025년의 시대적 배경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 '안티 패션(Anti-Fashion)'의 미학: "나 패션에 엄청 신경 썼어!"라고 외치는 듯한 스타일보다, 무심한 듯 기능에만 충실한 옷을 걸치는 것이 오히려 더 '쿨'하게 여겨지는 시대입니다. 고프코어는 '나는 옷의 기능과 본질에 집중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전통적인 명품 로고 플레이와는 다른 방식의 '조용한 과시(Quiet Luxury)'를 표현합니다.

  • 브랜드 헤리티지와 스토리: 아크테릭스, 파타고니아, 살로몬 등 고프코어를 대표하는 브랜드들은 수십 년간 극한의 환경에서 등반가와 탐험가들의 신뢰를 쌓아온 '진짜'들의 브랜드입니다. 이들이 가진 헤리티지와 스토리는 단순한 로고를 넘어, 옷을 입는 사람의 취향과 가치관을 대변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 젠더리스와 실용주의: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젠더리스' 트렌드 속에서, 성별 구분 없이 누구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고프코어 의류는 완벽한 대안이 되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수납공간을 제공하는 카고 팬츠나 방수 재킷은 그 자체로 매우 실용적입니다.

3. 도시인을 위한 고프코어 스타일링 가이드

고프코어라고 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등산복으로 치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상복과 자연스럽게 섞어 입는 것이 핵심입니다.

  • 입문자를 위한 '원 포인트' 전략: 평소 입는 데님 팬츠나 슬랙스에 바람막이 재킷이나 트레일 러닝화 하나만 더해보세요. 아크테릭스의 베타 LT 재킷이나 살로몬 XT-6 같은 아이코닉한 아이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트렌디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 색감 활용: 너무 화려한 원색의 등산복보다는 블랙, 그레이, 카키, 베이지 등 톤 다운된 색상을 중심으로 스타일링하면 도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습니다.

  • 의외의 믹스매치: 포멀한 셔츠나 여성스러운 원피스 위에 기능성 아웃도어 베스트나 재킷을 걸치는 '믹스매치'는 고프코어 스타일링의 고수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고프코어 열풍은 단순히 '등산복 유행'을 넘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불편한 아름다움보다 실용적인 편안함을, 과시적인 로고보다 옷의 본질적인 기능을 중시하는 시대. 오늘, 당신의 옷장 속에 잠자고 있는 바람막이 재킷을 꺼내 도시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마도 가장 편안하고, 가장 트렌디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이 가장 자주 하는 질문 (FAQ)

Q1: 고프코어랑 아웃도어룩, 테크웨어는 뭐가 다른 건가요? A: 아웃도어룩은 실제 아웃도어 활동을 위한 기능적인 옷차림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테크웨어는 미래적이고 도시적인 디자인에 기능성 소재를 결합한 스타일을, 고프코어는 아웃도어 의류를 일상복과 믹스매치하여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연출하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고프코어는 테크웨어보다 덜 공격적이고 더 실용적인 느낌을 줍니다.

Q2: 고프코어 입문자가 가장 먼저 사야 할 '필수템'은 무엇인가요? A: 1순위는 바람막이 재킷(쉘 자켓), 2순위는 트레일 러닝화입니다. 이 두 가지 아이템은 고프코어 스타일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면서도, 어떤 일상복과도 쉽게 믹스매치할 수 있어 활용도가 매우 높습니다. 아크테릭스, 파타고니아, 살로몬 같은 브랜드의 대표 모델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Q3: 고프코어, 너무 아저씨 같아 보이지 않게 입는 팁이 있나요? A: 실루엣과 핏이 중요합니다. 너무 딱 붙거나 어정쩡한 핏의 등산복보다는, 차라리 살짝 여유 있는 오버사이즈 핏의 아이템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톤 다운된 컬러를 기본으로 하고, 트렌디한 액세서리(볼캡, 비니, 실버 주얼리 등)를 활용하면 '아재미'를 덜어낼 수 있습니다.

Q4: 꼭 비싼 아웃도어 브랜드를 사야만 고프코어인가요? A: 아닙니다. 고프코어의 핵심은 브랜드 로고가 아닌 '기능성 아웃도어 무드'입니다. 물론 아크테릭스 같은 상징적인 브랜드가 있지만, SPA 브랜드나 다른 스포츠 브랜드에서 출시하는 기능성 의류를 잘 활용해도 충분히 고프코어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보다 아이템의 기능적인 디자인과 실루엣입니다.

Q5: 고프코어 트렌드, 금방 사라질 유행 아닐까요? A: 고프코어는 '편안함'과 '실용성'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큰 패션 카테고리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특히 기후 변화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기능성 의류의 수요는 계속될 것이므로, 고프코어 스타일 역시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며 오랫동안 사랑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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